안녕하세요, 가이드런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은님이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은님의 첫 달리기와 슬럼프, 그리고 극복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설레었던 첫 달리기
처음은 늘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마주한다. 물병 하나 달랑 들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은 채 도착한 그곳에서, 사람들은 처음인 나를 기꺼이 환대해 주었다.
가이드런프로젝트의 문을 두드리는 법을 알려준 다정한 언니, 내가 존경하는 맹학교 선배, 그리고 선배의 오랜 파트너이자 이 프로젝트의 대표님까지.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서 드디어 나의 첫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몸은 따로 놀았다. 팔은 어떻게 흔들어야 하는지, 옆에서 발을 맞추는 가이드러너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을 엉거주춤 달리고 있을 때, 카리스마 넘치는 코치님이 다가와 나를 불러 세웠다.
"자, 잠깐 잠깐! 우리 자세부터 다시 잡아봅시다!"
코치님의 지도 아래 제자리 뛰기를 하며 팔치기를 배웠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서툰 동작을 반복하려니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걷고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날의 나를 칭찬하고 싶은 건, 생경한 두려움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시간을 오롯이 채워냈다는 사실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상쾌했고, 내 몸을 온전히 내던져 달릴 수 있다는 감각은 경이로웠다. 그날 나는 기분 좋은 근육통과 함께 '꾸준히 나오겠다'는 야심 찬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부상과 슬럼프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던 탓일까. 하필 그다음 주, 연주 일정을 위해 에티오피아로 열흘간 떠나야 했다. 출국 직전까지 진도 공연을 소화하며 무리하게 서 있었던 탓인지, 귀국을 이틀 앞두고 발바닥에 타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생애 첫 러닝과 고된 일정들이 몸에 무리를 준 것이다. 결국 병원에서 받아 든 진단명은 '족저근막염'. 태어나 처음 경험한 충격파 치료는 떠올리기도 싫을만큼 고통스러웠다.
“역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봐.”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포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과 연주자로서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호기로웠던 꿈은 꺾였고, 나는 달리는 대신 달콤한 늦잠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2024년이 허무하게 저물어갔다.
2025년, 지독한 우울이 찾아왔다.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려 애쓰던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곤두박질쳤다. 처음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그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상담을 받아봐도 마음의 허기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법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뺨에 닿는 가을바람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눈팅만 하던 가이드런 단톡방에서 놀라운 이름을 발견했다. 대학 시절 꽤 친하게 지냈지만 연락이 끊겼던 오빠가 그곳에서 그룹 러닝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기억할까? 갑자기 연락하면 당황하지 않을까?'
며칠을 고민하다 소심하게 카톡을 보냈다.
"오빠,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혹시... 저 까먹은 건 아니죠? ㅋㅋㅋ"
기우였다. 오빠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조심스레 목요일 모임에 나와볼 것을 권했다. 발바닥 통증이 재발할까 봐 겁이 났지만, 이상하게 다시 달리고 싶어졌다.
러닝 당일 아침까지도 망설였다. 전날 큰 공연을 마친 뒤라 몸이 천근만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에 집 안에만 있는 건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간 러닝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2km를 완주했다. 가이드러너와 호흡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이 눈물이 날 만큼 큰 위로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악뮤(AKMU)의 수현 씨도 슬럼프를 겪으며 은퇴를 생각할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오빠 찬혁 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나와서 산책이라도 하자"며 손을 내밀었고, 그 덕분에 그녀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현을 꺼내준 사람이 오빠였다면, 나를 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린 건 놀랍게도 러닝이었다. 달리는 동안 나는 오직 나의 호흡과 발끝의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조금 힘들어질 때면 조금만 더 힘내보자며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거창하게 달리지 않아도 좋다. 문을 열고 나서는 그 한 걸음이, 당신의 삶에 예상치 못한 값진 순간들을 선물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