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5년 8월 2일
장소 :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발표자 : 선지원
기 내용은 당시 시각장애러너 선지원님의 발표 녹음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 이후 GrP 대표 장지은의 윤문을 걸쳐 정리되었습니다.
달리기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선지원이고요. 들리시죠. 제가 오늘 아침에 강아지 목욕시키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어... 아예 기억이 안 나네요. (떨리는 목소리, 웃음) 음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크게 세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나에게 가이드러너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두 번째로 오랜 기간 동안 가이드러너와 함께 해올 수 있었던 비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제가 생각 했을 때 최고의 가이드러너랑, 최고의 시각장애러너는 어떤 사람일지. 이렇게 생각을 해 보았는데요. 제가 이제 하려는 이야기는 제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기 때문에 혹시 동의가 안 되는 내용이 있더라도 그냥 '아 쟤는 저렇게 사나 보다.' 이렇게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에게 가이드러너는 어떤 존재일까?
아이고 떨리네요. 저는 2017년 여름에 달리기를 시작했는데요. 지금까지 해오면서 가이드러닝이 제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나름대로의 변천사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좀 정리를 해봤는데요. 가이드러너가 제 삶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있는지 이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가 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생각의 변화) 과정을 짧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처음 제가 달리기를 할 때는 가이드러너가 봉사자인 줄 알았어요. 일단 저 제가 남산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때 가이드러너를 소개해 주시는 분도 봉사자라고 칭하셨고, 함께 달리는 가이드러너분들도 막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봉사자인가보다, 그렇게 인지를 하게 됐고요. 그때 달리기 하면서 제가 깨달은 건 '아 시각장애인도 이런 봉사자가 옆에 있으면 뛸 수 있구나.' 그것과 '가이드러너가 없이는 뛸 수 없구나' 라는 게 저의 두 가지 큰 깨달음 이었습니다.
그래서 어 당시 가이드러너 분들께서 시간이 되면 봉사하러 오겠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의 모든 포커스가 자연스럽게 봉사자분들께 맞춰지다 보니 '아 달리기가 하고 싶은데...', '아 저분은 시간이 언제 되시지?' 그리고 '내가 뛸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나?'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시기에는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되게 감사해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다가 두 번째로 가이드 러너가 저에게 좀 음 미치는 그 포지션이 좀 달라지게 되는데요. 그... '훈련 파트너'로 여겨지더라구요.
여기서의 그 파트너는 왜 그 선수들 훈련할 때 뭐 대련 상대나 아니면 팀 대안 상대로 훈련 파트너가 있잖아요? 뭐 예를 들어서 국가대표 여성 팀이 훈련할 때 고등학생 남성 팀이 파트너가 되어준다든지. 그러니까 정말 나의 훈련의 필요를 위해서 함께 해줘야 되는 파트너로서 여겨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2021년부터 이제 선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성적을 내야 되는 인생이 되다 보니 훈련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까, 마음껏 훈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훈련이 되지 않는 것이 퍼포먼스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저를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 이 시기에는 아무래도 훈련 파트너로서 가이드 러너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어떡하면 나에게 맞춰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나의 훈련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 줄 수 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래서 부탁도 많이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아까 봉사자로서 제가 그 가이드러너를 바라보았을 때는. 추가 오른쪽으로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 완전히 왼쪽으로 이동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나의 필요를 위해서 가이드러너가 있어줘야 되는 것처럼 그렇게 여겨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지내니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가이드 러너 분들도 저를 부담스러워하시고 그리고 저도 제 뜻대로 가이드 러너 분들이 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될 때마다 아 이렇게 간단한 달리기라는 운동을...음, 할 수 없는 게 나의 삶이구나 이것에 대한 어떤 씁쓸함도 좀 있었고. 근데 그렇게 좀 고민의 시기를 많이 보내다가 '아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라는 좀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러다 가이드 러닝은 아무래도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수단이 아니라 관계로서 여겨져야 된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지금 제가 가이드러닝에 대해서 또 가이드러너의 포지션으로 여기고 있는 위치는 팀 멤버인데요. 아까도 앞에서 설명해 주셨듯이 육상은 개인 스포츠가 맞지만 가이드러너와 함께 달리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팀 스포츠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팀, 팀원들이 있는 거죠. 저와 이제 가이드러너분들이 팀을 이루어서 함께 이루어가는 그런 형태로 (생각이) 바뀌게 돼요.
그래서 아까 제가 그 어떤 훈련 파트너로서 가이드러너 분들을 생각했을 때, 저는 저의 목표에 대해서 포커스가 많이 맞춰져 있다 보니까 제 목표를 같이 이뤄줄 수 있는 가이드러너를 찾고 그리고 제 목표에 대해서 가이드 여러분들께 강요였는지 모르겠지만(웃음), 사실 부탁을 많이 했었고, 그걸 향해서 많이 달려갔었는데 팀 스포츠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좀 바뀌더라구요. 이게 나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목표가 되고 어떤 개인의 목표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좀 생각이 정리가 되었고요.
오랜 기간동안 가이드러너와 함께 달려올 수 있었던 비결
자연스럽게 제가 계속해서 가이드러너와 달릴 수 있는 비결을 이어서 이야기 드리자면 일단 먼저 공동의 목표를 설정을 하게 돼요. 이 과정에서 제가 그 가이드 러너 분들께 장문의 카톡을 많이 드렸어요. 요지는 진심을 전달하는 거였어요. 어쨌든 제가 이제 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의 러닝은 생존이고 커리어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목표가 뚜렷합니다. 네. 그런데 이 목표를 나의 목표로 여기기 보다는 함께하는 사람과 셰어하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같이 가슴 뛰게 하고 같이 목표를 향해 준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 편지를 진짜 많이 썼고요?(웃음) 그래서 이런 이런 방향을 향해서 내가 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괜찮으시면 같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함께하면 좋겠다. 이런 말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게 사실은 제 처음에는 제가 제 목표를 전가하는 느낌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많은 가이드러너분들이 감사하게도 거기에 공감해 주시고 같이 참여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가 얘기했던 어떤 목표를 위해서 가이드러너분들도 이에 대한 스스로의 세부 목표를 설정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훈련을 만났을 때는 같이 하고, 떨어져 지낼 때는 각자 훈련을 하다 보니까 가이드러너가 더 건강해지고 더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운동에 전념하기 때문에 어떤 성적 좋은 성적을 냈을 때 거기에 대한 기쁨도 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에 대한 목표도 구체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게 저는 정해져 있는 대회가 있고 그리고 어느 정도의 데이터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하지만, 사실 각자의 그 목표가 엄청 심각한 목표는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달리기를 하면서 늘 조깅하고 그리고 그냥 즐겁게 살살 뛰는 것도 좋지만, 어떤 한 대회나 아니면 기록이나 이런 목표를 설정해서 함께 그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도 되게 의미 있고 성취감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저는 부상을 진짜 많이 당했던 사람인데, 제가 이제 뛰지 못하던 시기, 조금 밖에 못 뛰는 시기, 운동에 전념해야하는 시기에 이렇게 좀 편차가 굉장히 많이 컸어요. 그런데 이때 저와 함께해 주셨던 가이드러너분들이 되게 분명하게 역할을 잘 해주셨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서 공유를 드립니다.
제가 아예 운동을 하지 못했던 진짜 누워있었던 시기에 가이드러너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너는 기운을 차리고 (아, 그 뭐지... 여튼) 뭘 받았고,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면 금방 잘 하게 될 거니까 그때까지 내가 열심히 체력을 쌓고 있을게. 더 많이 실력을 늘려놓고 있을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원래 부상 후에 복귀할 때 많이 못 하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이제 막 (코치님이) 15분만 뛰라는 거예요. 근데 이제 15분을 뛰기 위해서 막 1시간씩 이동해서 만나요.
그렇게 15분을 뛰고 헤어지는게 근데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부러 아프더라도 참고 막 30분이라도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눈치를, 네, 눈치를 많이 봤었는데 이게 서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또 이제 진심을 마구 전달하면서 15분 정도만 달려줄 수 있는지 이런 걸 많이 부탁을 드렸어요. 그 때 15분이면은 한 2km도 안 뛰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나는 숫자는 1.8km입니다.
근데 그 1.8km를 뛰기 위해 막, 막 십 몇 키로미터를 이동해가지고 이렇게 같이 달려주고 그랬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게 저는 가이드러너분들이 착하셔서, 음 봉사하는 마음으로 '희생'하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감사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이렇게까지 비효율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고 그거에 대한 어떤 소속감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그렇게 저에게 손을 내밀었던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제 복귀 하고 나서 더 열심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이렇게 막 15분씩 달려주러 한 시간씩 걸어오시라는 뜻은 절대 아니고요. (웃음) 네... 그냥 이렇게 팀으로 활동하게 되면 돈독함이 굉장한 위력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이드러너, 최고의 시각장애러너는?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이거 진짜 그냥 제 생각에 최고의 가이드러너는 음... 빨리 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달리기) 실력자보다는 시각장애러너가 안전하고 또 행복하게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시각장애러너가 가이드러너에게 있어 최고의 러너일까?'라고 생각했을 때. 저에게 하는 말인데.(웃음) 어떤 음 실력이나 커리어가 주가 아니라 같이 안전하게 달리고, 그리고 가이드러너로 하여금 함께 달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최고의 시각장애러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되게 추상적이죠.
네 어떻게 서로를 안전하고 즐겁게, 또 자부심 있고 만족스럽게 달리게 해줄지는 이번 하계 프로그램을 하시면서 각자의 각자의 팀 멤버들과 잘 이야기 나누시면서 구체화를 해 가시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