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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나라마라톤 후기

시각장애러너 서지혜 | 대회 | 2026-01-27

나라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지혜 - 환히 웃는 모습

2025 나라마라톤 후기

일시: 2025년 12월 12일 ~ 17일

장소: 일본 나라, 오사카

함께한 사람:
| 시각장애러너 서지혜, 최재혁
| 가이드러너 루빈, 김나라, 김누리, 장지은

지난 12월 가이드런프로젝트의 러너들은 일본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함께했던 시각장애러너 서지혜 님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나라마라톤 전날(엑스포)

나라마라톤은 엑스포부터 분위기가 남달랐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도 모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고, 이게 맞나 싶을 만큼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조용한 나라라는 동네에서 우리가 가장 시끄러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

아레나 안에서 배번을 찾고 나눠주는 봉사자분들 대부분이 장년층이었던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익숙하게 안내해 주시는 모습에서 이 대회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함께 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엑스포 역시 볼거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다양한 브랜드의 러닝화가 있었고 한참을 줄 서서 러닝화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러닝 양말이나 고글 같은 러닝용품부터, 간단한 먹거리까지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나라마라톤 굿즈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대회가 끝난 후에 굿즈를 사러 갔더니 올해 굿즈나 디자인이 예쁜 제품들은 이미 품절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굿즈만 남아 있어서 원하는 굿즈를 사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배번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실내경기장

나라마라톤

일본에서 열린 나라마라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지역 축제 같았습니다. 출발을 알리는 폭죽 소리와 함께 진행자분들이 끝없이 외치던 “잇떼랏샤이~(잘 다녀와)”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길가로 나와 응원을 해주셨고, 특히 아이들이 '간바레~'하고 외치는 소리는 너무 귀여워 달리면서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곳곳에서 “간바떼 쿠다사이!”, “화이또!”하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더 힘차고 더 신나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로부터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 즐거웠습니다.

출발 전 경기장 바라보며 브이하는 뒷모습 왼쪽부터 루빈, 누리, 재혁, 지혜, 나라

코스는 나라마라톤만의 특색이 느껴져 정말 좋았습니다. 출발지였던 넓은 경기장을 빠져나와 시내의 대로를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옆에 사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가까이에서 사슴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코스에서는 사슴들이 도로 한복판에 있는 경우도 있어 사슴을 피해 달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달리는 코스의 절반은 사슴을 볼 수 있는 구간이었는데 그야말로 ‘사슴 천국’이었습니다. 달리는 중간에 사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험은 아마 나라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추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짧지만 숲속을 달리는 트래킹 코스도 있었고, 나라의 주요 랜드마크인 동대사를 통과하는 구간도 포함되어 있어 달리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중간중간 업힐 구간이 있긴 했지만 워낙 코스가 다채로워서 업힐조차 짧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주로(도로) 옆 인도에 줄지어 걸어가는 사슴 세마리

대회 운영 방식도 인상 깊었습니다. 도로를 전면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대에 따라 일부 차선만 통제하고 나머지는 개방하는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서울의 대형 마라톤 대회처럼 극심한 혼잡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많은 봉사자분들과 대회 스태프분들이 응원과 도로 안내를 함께 해주셨고, 이 대회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인력이 투입되었는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졌습니다.

특히 시각장애러너로서 크게 다가왔던 점은 러너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안전거리 확보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잘 자리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달릴 때면 늘 불안함이 따르기 마련인데, 나라마라톤에서는 병목 구간도 짧았고 옆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상황도 거의 없었습니다. 덕분에 비교적 평화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자유롭게 달릴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가이드 러너 나라님, 앞에서 길을 터주시며 도시 ‘나라’를 안내해 주신 루빈님과 우성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슴이랑 주로에서 왼쪽부터 나라, 지혜, 사슴, 루빈

완주 후 포토월 앞에서 말풍선 보드 들고 왼쪽부터 나라, 지혜, 루빈, 우성

한 가지 이 대회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라마라톤에는 하프 코스가 없고 풀코스와 10km 두 종목만 있는데 10km 종목에는 메달이 없다는 거예요..! 티셔츠도 예쁘고 양말도 예뻐서 메달은 얼마나 예쁠지 은근히 기대하며 완주했는데, 일본에서는 10km 완주로는 메달을 주지 않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자체가 워낙 좋다 보니, ‘다음에는 풀코스를 도전해야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아주 먼 이야기입니다.

정말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도 많은 대회를 뛰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나라마라톤을 계기로 한국의 다양한 대회들, 그리고 또 다른 나라의 마라톤 대회들까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풍경과 함께 달리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더 많은 곳에서 달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

러닝팀 출발 전 왼쪽부터 시계방향 누리, 재혁, 우성, 루빈, 지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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